“광한루의 달 그림자, 부부의 시심이 되다”… 춘향과 삼의당 이야기

전북 남원에서는 4월 30일부터 5월 6일까지 ‘춘향의 소리, 세상을 열다’를 주제로 제95회 춘향제가 한창이다. 요천을 따라 흐르는 바람은 지리산의 향기를 머금고, 광한루원 주변으로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가 물결친다. 고전소설 ‘춘향전’이 소리(판소리)에서 출발해 시대의 언어로 변주되어 온 역사를 품은 도시, 남원은 지금 그 정체성을 다시 노래하고 있다.
춘향전은 신분의 벽을 넘어선 사랑 이야기로, 조선 후기부터 지금까지 창극, 오페라, 뮤지컬 등 다양한 예술로 변주되며 사랑받아왔다. 춘향제 현장 역시 공연이 중심이다. 광한루원 인근 메인무대에서는 ‘춘향 제향’을 시작으로 ‘일장춘몽 콘서트’, 십수정 야외무대에서는 신인 판소리 대회와 퓨전 국악 무대가 이어진다. 전통을 새롭게 입고 세대 간 공감을 이끄는 무대다.
하지만 올해 춘향제에서 조용히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조선 후기 여류 시인 삼의당 김씨(1769~1823). 그녀는 춘향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는 낮지만, 실제 남원에서 태어나 250여 편의 시를 남긴 인물이다. 사대부 여인도 아닌 평범한 여염집 여성으로서 시문을 남겼다는 점에서, 허난설헌이나 신사임당 못지않은 조선 여성 문인의 진가가 재조명되고 있다.
그녀의 문학적 자취는 요천의 승월교 옆 안내판에서 시작된다. 삼의당은 남편 하립과 첫날밤 시로 사랑을 나눈 ‘초야창화(初夜唱和)’로도 유명하다. 부부는 시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고, 그 시는 사랑과 존경을 품은 조선시대 부부의 이상적인 교감을 보여준다.
삼의당의 시문은 1930년 《삼의당 김부인 유고》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최근 들어 다시 그 의미가 되살아나고 있다.
춘향의 사랑이 광한루의 달빛 아래에서 꽃피었다면, 삼의당의 사랑은 시 속 문장으로 영원히 남았다. 특히 남원 향교동 유천마을과 진안 마이산 자락에 부부 시비가 세워지며, 그녀의 문학과 삶은 이제야 비로소 조명을 받고 있다. 춘향제가 100년을 향해가는 이 시점에서, 춘향뿐 아니라 또 다른 남원 여인의 목소리가 함께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광한루원 명승 제33호에 위치한 고목 뽕나무, 조선의 달빛 아래 남녀가 오작교를 거닐며 속삭였을 옛사랑. 그리고 이제 승월교 아래, 시로 사랑을 노래한 부부의 정이 덧붙는다. 춘향의 이야기만이 아닌, 삼의당의 시도 이 고장에 흐르기 시작했다.
제95회 춘향제는 현재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며, 전통문화의 새로운 100년을 모색하고 있다. 춘향의 소리와 삼의당의 시가 함께 살아 숨 쉬는 남원골은, 그 자체로 조선의 감성과 낭만이 깃든 문학 도시다. 봄날의 끝자락, 남원에서 만나는 사랑의 언어는 더없이 깊고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