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여행할 때면 오름마다 각기 다른 인상을 남긴다. 어떤 오름은 바람결이 기억에 남고, 또 어떤 곳은 그 풍경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을 붙든다. 특히 다랑쉬오름은 5월이면 전혀 다른 풍경으로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흔히 볼 수 없는 야생화, 갯무꽃이 그 중심에 있다.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다랑쉬오름은 외형부터 시선을 끈다. 거의 완벽한 원형을 이루는 이 오름은 밑지름이 1km를 넘고, 둘레는 3.3km에 달한다. 정상 높이는 227m로, 적당한 난이도의 트레킹 코스로 손꼽힌다. 하지만 진짜 감탄은 오름을 오르며 마주하게 되는 풍경에서 시작된다.
다랑쉬오름의 자락에 피어난 보랏빛 갯무꽃은 그 자체로 특별한 볼거리다. 한반도 전역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이 꽃은 제주에서도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군락을 이룬다. 연분홍빛이 섞인 갯무꽃이 초록 풀밭 위에 퍼져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이색적이다. 바람결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 자태는 마치 물결처럼 부드럽게 흘러간다.
오름의 형태 또한 감상 포인트다. 대부분의 오름이 한쪽으로 치우친 경사를 보이는데 반해, 다랑쉬오름은 원추형의 정갈한 실루엣을 지닌다. 그 중심에는 분화구가 자리 잡고 있는데, 깊이가 무려 115m에 달해 한라산 백록담과 맞먹는 규모다. 이 타원형 분화구는 산정부의 고요한 풍경을 한층 더 묵직하게 만든다.
갯무꽃 군락지를 지나면 섬잔대, 시호꽃, 송장꽃, 가재쑥부쟁이 등 다양한 야생화가 줄지어 나타난다. 마치 작은 식물도감을 걷는 듯한 기분이다. 경사면을 따라 걸으면 발아래 풍경과 주변의 울창한 초록이 맞물려 입체적인 자연미를 선사한다.
이 오름이 단순한 자연 명소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안에 깃든 역사 때문이다. 다랑쉬오름 주변은 과거 제주 4·3 사건의 아픔이 남아 있는 곳이다. 지금은 폐촌이 된 다랑쉬 마을이 인근에 있었고, 1992년에는 오름 근처 다랑쉬굴에서 희생자 유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이곳을 걷는 발걸음에는 자연스레 조용한 마음이 깃든다.
다랑쉬오름은 연중 언제나 개방돼 있으며, 별도의 입장료는 없다. 트레킹 시간은 왕복 약 1시간 30분 정도로, 여유로운 속도로 둘러보기에 적당하다. 따로 등산 장비가 없어도 운동화와 가벼운 복장만으로 충분히 오를 수 있다. 그만큼 접근성이 좋지만, 오름 특유의 경사와 바람은 여전히 자연의 위엄을 실감하게 한다.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한국에 이런 풍경이 있는 줄 몰랐다”, “마치 동화 속 정원 같다”는 반응을 보인다. 일부 SNS에서는 갯무꽃 시즌이 되면 ‘제주 5월 명소’로 소개되며 점차 주목을 받고 있다. 인근에는 세화해변과 김녕사굴 등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지들도 가까워 당일 코스로 엮기에도 좋다.
5월의 다랑쉬오름은 단순한 꽃놀이를 넘어선다. 흔하지 않은 야생화의 색감, 오름의 구조미, 그리고 조용히 흐르는 역사까지. 그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제주에서만 가능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한 번쯤 이 꽃들 사이에 앉아 바람을 느껴보는 경험, 놓치기 아까운 순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