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꽃 보려면 지금뿐”… 5월에만 열리는 제주의 비밀 정원

국내여행 25.04.23 17:00 by 이재형 에디터 0개 댓글 구독

제주를 여행할 때면 오름마다 각기 다른 인상을 남긴다. 어떤 오름은 바람결이 기억에 남고, 또 어떤 곳은 그 풍경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을 붙든다. 특히 다랑쉬오름은 5월이면 전혀 다른 풍경으로 여행자들을 맞이한다. 흔히 볼 수 없는 야생화, 갯무꽃이 그 중심에 있다.

사진 = 대한민국구석구석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다랑쉬오름은 외형부터 시선을 끈다. 거의 완벽한 원형을 이루는 이 오름은 밑지름이 1km를 넘고, 둘레는 3.3km에 달한다. 정상 높이는 227m로, 적당한 난이도의 트레킹 코스로 손꼽힌다. 하지만 진짜 감탄은 오름을 오르며 마주하게 되는 풍경에서 시작된다.

사진 = 대한민국구석구석

다랑쉬오름의 자락에 피어난 보랏빛 갯무꽃은 그 자체로 특별한 볼거리다. 한반도 전역에서도 좀처럼 보기 힘든 이 꽃은 제주에서도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군락을 이룬다. 연분홍빛이 섞인 갯무꽃이 초록 풀밭 위에 퍼져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이색적이다. 바람결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 자태는 마치 물결처럼 부드럽게 흘러간다.

오름의 형태 또한 감상 포인트다. 대부분의 오름이 한쪽으로 치우친 경사를 보이는데 반해, 다랑쉬오름은 원추형의 정갈한 실루엣을 지닌다. 그 중심에는 분화구가 자리 잡고 있는데, 깊이가 무려 115m에 달해 한라산 백록담과 맞먹는 규모다. 이 타원형 분화구는 산정부의 고요한 풍경을 한층 더 묵직하게 만든다.

사진 = 대한민국구석구석

갯무꽃 군락지를 지나면 섬잔대, 시호꽃, 송장꽃, 가재쑥부쟁이 등 다양한 야생화가 줄지어 나타난다. 마치 작은 식물도감을 걷는 듯한 기분이다. 경사면을 따라 걸으면 발아래 풍경과 주변의 울창한 초록이 맞물려 입체적인 자연미를 선사한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이 오름이 단순한 자연 명소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안에 깃든 역사 때문이다. 다랑쉬오름 주변은 과거 제주 4·3 사건의 아픔이 남아 있는 곳이다. 지금은 폐촌이 된 다랑쉬 마을이 인근에 있었고, 1992년에는 오름 근처 다랑쉬굴에서 희생자 유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이곳을 걷는 발걸음에는 자연스레 조용한 마음이 깃든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다랑쉬오름은 연중 언제나 개방돼 있으며, 별도의 입장료는 없다. 트레킹 시간은 왕복 약 1시간 30분 정도로, 여유로운 속도로 둘러보기에 적당하다. 따로 등산 장비가 없어도 운동화와 가벼운 복장만으로 충분히 오를 수 있다. 그만큼 접근성이 좋지만, 오름 특유의 경사와 바람은 여전히 자연의 위엄을 실감하게 한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이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한국에 이런 풍경이 있는 줄 몰랐다”, “마치 동화 속 정원 같다”는 반응을 보인다. 일부 SNS에서는 갯무꽃 시즌이 되면 ‘제주 5월 명소’로 소개되며 점차 주목을 받고 있다. 인근에는 세화해변과 김녕사굴 등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지들도 가까워 당일 코스로 엮기에도 좋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5월의 다랑쉬오름은 단순한 꽃놀이를 넘어선다. 흔하지 않은 야생화의 색감, 오름의 구조미, 그리고 조용히 흐르는 역사까지. 그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제주에서만 가능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한 번쯤 이 꽃들 사이에 앉아 바람을 느껴보는 경험, 놓치기 아까운 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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