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저물어가는 시점에도 꽃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포슬포슬한 하얀 꽃잎으로 신비로운 풍경을 선사하는 이팝나무에 주목해보자. 벚꽃이 사라진 자리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이팝나무는 마치 ‘눈꽃’ 같은 인상을 남긴다. 이름이 낯설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신성한 존재로 불렸고, 요즘은 감성 사진의 비밀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팝나무는 4월 중순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벚꽃보다 조금 늦게 피어나지만 꽃잎이 더 오래 유지되며, 하얀 빛깔 덕분에 초여름으로 이어지는 계절 변화를 한층 깨끗하고 청아하게 느끼게 해준다. 전국 각지에 이팝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사진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두 곳을 소개한다.
밀양 위양못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에 자리 잡은 위양못은 신라 시대부터 저수지 역할을 해온 곳이다. 맑은 물과 고즈넉한 정자, 그리고 잔잔한 산세가 어우러져 사시사철 풍경이 뛰어나지만, 특히 4월 말 무렵에 꽃피는 이팝나무 덕분에 봄의 마지막을 붙잡고 싶은 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하얀 꽃송이가 호수 위로 비치는 순간은 수채화 속 장면처럼 몽환적이어서 일찍부터 사진작가들의 명소로 알려졌다.
여유롭게 산책로를 돌며 이팝나무가 만들어낸 순백의 길을 따라가면, 벚꽃이 아닌 다른 봄꽃도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가까운 거리에 밀양 시내가 있어 식사나 카페 투어를 곁들이기도 좋다. 날씨가 덥지 않은 초여름 무렵까지 이팝나무가 유지되므로, 여유를 두고 방문해도 무리가 없다.
전주 팔복동 철길
전북 전주시 팔복동 공장지대에 조성된 이팝나무 철길은 길이 약 630m로, 철길 양옆을 하얀 꽃잎이 빼곡히 물들인다. 꽃비가 내리는 철길이라는 별칭답게, 이팝나무가 터널처럼 우거질 때면 봄에 내린 눈을 연상시키는 장관이 펼쳐진다. 덕분에 SNS를 통해 소문이 빠르게 퍼지면서 전주의 감성 포토존이 되었다.
철길 주변은 접근성이 좋아 가볍게 들르기에도 편하다. 근처에 위치한 팔복예술공장에서는 다양한 전시나 문화행사가 이뤄지므로, 예술과 자연을 한 번에 즐기고 싶다면 동선을 함께 짜보는 것도 추천한다. 일부 기간에는 체험 장터나 작은 공연이 열리기도 하니, 방문 전 공식 정보를 확인해두면 더욱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벚꽃이 물러간 뒤에도 봄을 이어가는 이팝나무는, 순백의 고요함 속에서 계절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떠나버린 꽃을 아쉬워하기보다 눈처럼 소복이 내린 하얀 향연을 즐기러 짧은 여행을 떠나보자. 볼수록 은은해지는 이팝나무의 매력에 눈과 마음이 함께 맑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