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축제와 북적이는 인파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이번 봄에는 조용한 섬 여행을 떠나보자. 제주도 대정읍 운진항에서 배를 타고 약 10분, 섬 전체가 초록으로 물든 가파도가 그 목적지다.

이곳은 가파른 언덕 하나 없이 평탄한 둘레길로 구성되어 있어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는 힐링 여행지다.
5월이면 가파도는 청보리 축제가 한창이다. 섬 전역에 펼쳐진 청보리밭은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처럼 일렁이며, 고요한 섬마을을 초록빛으로 덮는다. 유채꽃까지 더해진 풍경은 마치 수채화처럼 부드럽고 몽환적이다. 특히 흐린 날이나 안개 낀 날엔 색채가 더욱 깊어져 가파도 특유의 정취가 살아난다.
가파도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고요한 분위기에 압도된다. 선착장에서부터 시작되는 청보리밭은 바다를 등지고 부드럽게 펼쳐진다. 섬 곳곳에 조성된 아기자기한 포토존과 벽화, 쉼터들은 여행자들에게 쉼표 같은 공간이 되어 준다.
섬 중앙에 위치한 ‘소망 전망대’는 꼭 들러야 할 명소다. 이곳에서는 섬 전체와 청보리밭, 그리고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전망대 주변에는 포토프레임과 조형물도 설치되어 있어 여행의 추억을 남기기에 좋다. 흐린 하늘 아래서도 청보리의 연둣빛은 선명하게 살아나며, 자연의 빛과 색을 오롯이 느끼게 한다. 이곳에서는 햇살보다 바람과 안개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청보리밭을 따라 이어진 둘레길은 전체가 평탄한 흙길과 데크로 조성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 편하다. 둘레길을 걷다 보면, 바다 너머로 마라도가 보이는 조망 포인트도 곳곳에 있다. 바람을 따라 유유히 걷는 시간 동안 가파도의 속도에 자연스럽게 동화된다.
가파도의 또 다른 매력은 섬 특유의 정겨운 먹거리다. 둘레길 중간중간에는 소박한 매점과 카페, 간식 코너가 마련되어 있어 청보리 향 가득한 공기 속에서 간단한 식사나 커피를 즐기기에 좋다. 인공적인 장식 없이도 가파도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선물한다.
이 시기에는 특히 사람보다 자연에 더 집중할 수 있다. 봄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이 순간, 가파도는 그 어떤 관광지보다 더 깊고 차분한 위로를 전한다. 북적임 없는 섬에서 느릿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화려함보다 고요함, 빠른 여행보다 깊은 몰입을 원한다면, 지금이 가파도를 찾기에 가장 좋은 시기다. 청보리와 유채꽃이 함께 만드는 초록빛 섬, 그 위를 걷는 모든 순간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