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마다 이야기가 흐르고, 벽화마다 기억이 숨 쉬는 마을이 있다. 김해 금병산 자락 아래 자리한 ‘찬새내골 벽화마을’은 단순한 벽화 관광지를 넘어, 마을 주민의 삶과 시간을 예술로 녹여낸 살아 있는 문화 공간이다.

‘찬새내골’이라는 독특한 이름은 금병산 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샘물에서 비롯됐다. 이 찬샘은 과거 주민들의 식수원이자 생활의 중심지였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 그 물줄기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물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기억은 벽화를 통해 오늘날 여행자에게 전해지고 있다.
찬새내골은 단순히 오래된 주거지에서 벽화를 입힌 것이 아니다. 이곳은 마을 재생 사업과 주민 참여형 프로젝트가 결합되어, 골목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책이자 예술 전시장이 된 곳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알록달록한 캐릭터 벽화들이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빨간머리 앤’부터, 모험심을 자극하는 ‘미래소년 코난’, 순수한 감성을 품은 ‘프란다스의 개’와 ‘이웃집 토토로’까지 골목을 따라 펼쳐진 캐릭터들은 단순한 미술이 아니라,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의 매개체다.
특히 이웃집 토토로 벽화는 마을을 대표하는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귀여운 캐릭터와 배경이 어우러져 SNS 인증샷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주말이면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 북적인다.
이 캐릭터 벽화 외에도 한국의 감성을 담은 ‘검정고무신’ 벽화는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동시에 따뜻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벽화 속 어린아이들이 공을 차고, 가게 앞에 앉아 라면을 먹는 모습은 실제 과거 마을 풍경을 보는 듯하다.
찬새내골 이야기길을 따라 걷다 보면 벽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삶 그 자체였음을 깨닫게 된다. 골목 곳곳에서 “여기서 어릴 때 숨바꼭질했지”라며 회상하는 어르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가족 여행자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참새미우물터는 과거 마을의 물줄기를 책임지던 핵심 공간이다.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어, 그 자리에서 시간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물 하나로 시작된 마을의 역사와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다.
우표전시관은 예약제로 운영되는 소규모 공간이지만, 희귀 우표와 세계 각국의 테마우표가 전시돼 있어 필경 애호가뿐 아니라 일반 관람객에게도 인상 깊은 체험이 된다. 하절기 기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개장하며, 단체 예약도 가능하다.
추억의 빨래터는 마을 아낙네들이 모여 빨래하며 수다를 나누던 정겨운 공간을 복원한 장소다. 지금은 물이 흐르지 않지만, 빨랫줄과 방망이, 고무다라이가 배치되어 있어 과거 공동체 문화의 일면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마을 중앙에는 문화광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지역 행사와 작은 장터, 주민 모임 등이 열리는 곳으로, 산책객과 등산객의 쉼터 역할도 겸하고 있다. 특별한 날엔 로컬 농산물 판매 부스가 열리기도 해 주민과 방문객의 자연스러운 교류가 이루어진다.
찬새내골 벽화마을은 단순히 예쁜 벽화만으로 주목받는 공간이 아니다. 여기서 그려진 그림은 누군가의 기억이고, 담벼락은 삶의 기록이다. ‘어린 시절의 꿈과 희망’, ‘이웃과 함께한 따뜻한 정’, ‘잊혀가는 공동체의 풍경’이 이 작은 마을 골목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김해를 찾는 여행자라면 찬새내골은 꼭 걸어봐야 할 골목이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단순히 과거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공감’과 ‘연결’을 다시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