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문턱,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고요한 시간 속에서 자연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경기도 수원 광교산 자락에 위치한 ‘봉녕사’는 유구한 세월을 간직한 고찰로, 이맘때면 수백 년 된 향나무 아래 능소화가 피어나 절정을 이룬다.

도심에서 멀지 않지만 사찰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는 듯한 정적인 풍경은 방문객의 마음을 고요하게 물들인다. 6월 한 달간만 볼 수 있는 능소화 군락은 봉녕사의 오래된 돌담과 어우러져 마치 수묵화처럼 깊은 정취를 자아낸다.
봉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로, 수원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고려시대 고승 원각국사가 창건한 이후, 조선 예종 원년인 1469년 혜각국사에 의해 중창되었고, 당시 ‘성창사’라 불렸던 명칭은 ‘봉녕사’로 정착되며 현재에 이르렀다.
이 사찰의 역사에는 조선 세조로부터 스승의 예우를 받았던 혜각국사가 깊이 관여돼 있다. 그는 간경도감의 경전 언해 작업에도 참여하며 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겼고, 봉녕사의 위상을 굳건히 다졌다.
근대 이후에도 봉녕사는 비구니 교육 도량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1970년대 묘전스님과 묘엄스님의 주도로 선원, 요사, 승가학원 등이 들어섰고, 이후 승가대학으로 발전해 지금은 비구니 승려의 교육과 수행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사찰 내부에는 고려 시대 석조 삼존불이 고요히 모셔져 있으며, 대웅전 앞마당에는 수령 800년이 넘는 향나무가 우뚝 서 있다. 오랜 세월 사찰을 지켜온 이 고목은 봉녕사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연과 건축이 하나 되는 풍경을 완성한다.
특히 6월이 되면 담장 아래 능소화가 조용히 꽃을 피운다. 수수하면서도 선명한 주황빛 능소화는 화려하지 않지만 절의 분위기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오랜 세월을 견뎌낸 돌담과 고목 사이에서 피어난 꽃들은 사찰의 고요한 풍경 속에 작은 생명의 울림을 더한다.
봉녕사는 입장료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으며,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기본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하절기와 동절기에는 일몰 시간에 맞춰 변동될 수 있다. 주차 공간은 무료로 제공되며, 광교산 자락이라는 지리적 이점 덕분에 차량이나 대중교통을 통한 접근성도 뛰어나다.
잠시 일상을 벗어나 마음의 속도를 늦추고 싶다면, 그리고 가장 조용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싶다면, 6월의 봉녕사를 찾아보자. 능소화와 향나무, 오래된 불상과 산사의 고요함이 어우러진 이곳에서 새로운 계절의 시작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